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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시민저널

[마을풍경]여덟평 동네미용실 이야기

아파트 상가에 입주해 있는 가게들은 어느 곳이나 대부분 비슷한 업종들이다. 이를테면 2층에는 학원, 1층에는 치킨 맥주집이나 세탁소, 미용실, 아니면 편의점 등. 마치 아파트 상가의 공식처럼 배열되어 있다. 

 

정왕4동 건영2차 아파트 상가에 위치하고 있는 미장원은 이런 자연스런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한 아파트 상가에 미장원 두 곳이 나란히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말이다.

 

미장원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세련된 화장과 머리를 한 젊은 원장이다. 건영2차아파트의 [희망미용실]은 시대가 만들어 준 이 흔한 이미지마저 비껴갔다. 미장원의 원장은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변성하 씨이다. 

 

오전 11시, 8평 남짓한 미용실을 들어서자, 할머니 세 분이 있었다. 누가 손님이고, 주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파마을 하기 위해 헤어캡을 두르거나 수건을 두른 분이 손님일테고, 가위 정리를 하고 계신 분이 주인일테고.... 헤어캡을 쓴 할머니는 예순 두 살 때부터 이곳을 이용한 20년 단골지기다. 올해로 82세.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인사를 하자 주인보다 우리를 더 반긴다. 

 

만사형통 스마일, 긍정적이야. 손님이 많든 적든 정성껏 해 줘. 와서 뭐라고 안해도 내 스타일 아니까 가만 있어도 돼. 이집에 10년, 20년 단골손님들 많아.

 

▲ 정왕4동 건영2차아파트에 있는 희망미용실 모습이다. 벽에 걸려 있는 '정발미안' 붓글씨가 인상적이다. 사진@권채희. 2017.08.07

 

미장원 곳곳에 물든 세월의 흔적들 사이로 손 때 묻은 미용기구들이 정돈돼 있다. 파마지를 말고 있는 변 원장 뒤로 회색벽에 붙어있는 유리병이 보인다. 아이비와 스킨 답서스 잎을 매달고 있다. 전면 거울 위로 ‘정발미안(正髮美顔)’이라고 크게 쓰여진 붓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20년 전, 아버지가 써 준 글이라고 한다. ‘머리가 단정해야 얼굴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아담한 키에 보라색 셔츠, 옅은 회색 7부 바지, 꽃분홍색 단화. 6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피부와 맑은 얼굴. 변 원장은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나 20대부터 미용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올림머리를 하나씩 풀면서 머리를 어떻게 하는지 눈여겨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미용을 한지 어느덧 50여년, 이제는 얼굴만 보고도 어떤 머리가 어울릴지 감이 온다.  

 

인천 살다가 여동생이 여기 살아서 이리로 왔지. 그 때만 해도 이마트도 없고, 월드아파트 지하에 슈퍼가 있어서 여기 상권이 컸어. 옆에 미장원이 있었지만, 당시 워낙 상권이 큰 곳이라 하나 더 있어도 되지 싶어 지금 이 가게를 사서 들어왔어. 처음 몇 년은 남동생 내외랑 같이 했어. 

 

▲ 희망미용실 변성하 원장. 사진@권채희 2017.08.11

 

몇 해 전, 변 원장은 인천 논현동으로 이사를 했다. 덕분에 출근길은 오롯이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아침밥 먹고, “야! 능력있네. 이 나이에 출근도 하고.”라며 자동차 안에서 큰 소리로 자신에게 칭찬을 한다. 또, 맑은 날은 “햇님아 니 사랑한데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예순 넘은 나이에 일한다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이건 이래서 감사, 저건 저래서 감사하다. 

 

누구나 얼굴에 주름진 수 만큼 삶의 굴곡도 있기 마련. 매사에 긍정적인 변 원장에게도 한 때 버티기 힘든 무거운 삶이 있었다. “이 가게가 처음에는 내 거였어. 근데 지금은 월세 내고 해. 10여년 전에 단골 손님으로 오던 언니 말을 듣고 가게 팔아서 목포 어디에다 쓰지도 못 하는 땅을 사서... 그 거 때문에 속 많이 끓였다. 그 언니 원망도 많이 했지. 자고 나면 죽일 놈, 죽일 년도 많았는데, 요즘 많이 걷어 냈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잘못된 선택을 한 내 탓이라고 생각해. 내가 똑똑했어야 했는데...” 

 

나이 들면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렇지 다들 마음 동굴 속에 고구마 한 보따리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을 이기고 살 수는 없는 법. 오랜 세월은 변 원장에게 내려 놓는 지혜를 주었다.

 

20여년 전에 이웃하고 앙금이 있었는데, 여태 못 풀고 있다가 얼마 전에 풀었어. 어느날 그 집 가게 문이 닫혀 있길래 가서 보니 아들 장가 간다고 가게 문에 붙여 놓았더라고. 다음날 봉투 들고 찾아가서 축하해 주고 안아주고 왔지. 서로 미안하다 하고. 

 

인터뷰하는 동안 나무 의자에 앉은 두 할머니는 건강 얘기로 정신이 없다. 염증에 좋다는 엉겅퀴, 우슬 얘기로 심각하다. 변 원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언니, 빨리 와. 손님 없어.” 어제 기다리다가 가신 손님이 오늘도 기다릴까봐 전화한 거라고 한다. 할머니 한 분이 할아버지 밥 차려줘야 한다며 일어서 나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좀 전에 전화하셨던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 희망미용실 변성하 원장. 사진@권채희 2017.08.11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살지만, 변 원장은 오늘을 위해 산다. “돈은 들어왔다 하면 나가. 마음에 드는 물건 있으면 고민 안해 그냥 사. 안 깎고. 내일 또 벌면 되니까.” 매일 자신을 칭찬하듯 먹는 것 하나에도 늘 정성을 다한다. “혼자 먹어도 찌개 끓이고 반찬 몇 가지 해서 예쁜 그릇에 담아 먹어. 버섯 하나를 볶아도 빨간 파프리카, 노란 파프리카, 마늘, 파 넣어서 맛있게 먹어. 내가 나를 대접해야지, 누가 날 대접해.” 문 닫고 집 가면 밀린 피로에 대충 먹게 될 것도 같지만, 변 원장은 하루도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법이 없다. 

 

희망미용실은 해 뜨면 열고 해 지면 문을 닫는다. “보통 9시에 미용실 문을 열어. 예약 손님 있으면 7시에도 나오고, 손님 없으면 일찍도 들어가고... 목요일에는 놀고...” 동네미용실이 쉬는 요일은 대부분 화요일이다. 왜 목요일에 쉬냐고 묻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그렇게 쉬었어.” 

 

며칠 뒤 다시 들른 미용실에는 할머니 한 분이 파마롤을 풀고 있었고,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미용실에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생경했다. “머리 너무 예뻐요. 집에 그냥 가시기 아까울 것 같아요.“라고 할머니께 인사를 하자 “데이트 하러 갈거야”라며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강남보다 나아. 머리는 아무데서나 못해. 이사 간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파마하러 이리로 오잖아.” 그 자리에서 3시간 동안 할머니를 기다린 할아버지는 불평보다 인사를 건넸다. “우리 마누라 이쁘게 해줘서 고마워요” 나란히 걸어 나가는 두 분의 뒷모습을 보며 퉁명스런 질문이 올라왔다. ‘저 할아버지는 젊어서도 저렇게 마누라한테 살뜰했을까?’ 

 

“50대 이후 아줌마 머리는 컷트가 되어야 해. 짧은 머리는 머리모양이 다양하잖아. 경력이 많아야 다양하게 할 수 있어.” 말마다 조근조근 미용 연륜들이 묻어 나왔다. 그런 이유일까. 이곳 희망미용실을 찾는 사람들은 의외로 다양하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손님도 한국에 나올 일 있으면 머리하러 와. 송도로 이사간지 10년이 됐는데도 나한테 와서 머리하는 손님, 교수님 사모님...”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서울로 이사 간 이웃을 이곳 희망미장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 얼마나 놀랍고 반갑던지. 

 

인터뷰를 끝내고 미장원을 나서는데 뻗친 내 머리를 보고 변 원장이 한 마디 한다. “원하는 머리를 하려면 머리방향 반대로 말려야 모양이 나와.” 우리의 삶도 머리와 닮았다. 가지고 싶어도 때론 놓아야 모양이 나오는 삶의 철학 말이다. 잘 물든 가을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났다. 어느덧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고, 서쪽 하늘에는 눈이 부시도록 황홀한 노을이 졌다. 희망미용실에 이 아름다운 노을이 오래토록 물들었으면 좋겠다. 

 

취재. 권채희, 홍준수, 글. 권채희

 

이글은 '사)더불어함께'에서 삼성꿈장학재단 후원으로 진행한 인터뷰 글쓰기(지역자원조사 YOU) 결과물입니다. 수강생분들의 글을 SMD에서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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