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이크로시민저널

인간은 선에 가깝게 태어나서 악하게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영화 엑스페리먼트 (The Experiment)의 한 장면


“우리 중에 누군가는 죄수가 되고, 누군가는 간수가 되는 거야. 물론 컴퓨터로 랜덤하게 정할 거야. 복불복이지. 이 신분으로 14일 간 지내고 나면 300백만 원 줄게. 단, 규칙이 있어. 첫째,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부를거야. 둘째, 죄수는 간수가 부르면 '예, 간수님'이라고 대답해야 해. 셋째, 소등 후 대화하면 안돼. 넷째, 음식은 남기면 안돼, 다섯째, 간수 명령에는 즉시 복종해야 해, 여섯째, 규정을 위반할 시 퇴장이야.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물리적 폭행을 해서는 절대 안돼. 어때? 해 볼래?"


이 설정은 1971년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필립 짐바르도 심리학 교수가 '교도소의 생활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스탠퍼드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SPE)'을 하기 위한 조건이다. 필립 교수가 이 연구를 위해 신문에 광고를 내자 70명이 지원했다. 이 중에서 전과자나 마약중독자, 심리적 병약자 등을 제외하고 24명을 선발했다. 하지만 14일 간 실험하려던 이 실험은 6일 만에 종료됐다.


2001년, 독일에서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이 이 연구를 모티프로 영화를 제작했다. 모리츠 블라이브토로이 주연의 엑스페리먼트 (The Experiment)다. 이 영화는 9년 후인 2010년 미국 폴 쉐어링 감독이 애드리언 브로디를 주연으로 리메이크 했다. 그로부터 6년 후 우리는 2001년 원작을 찾아 DVD룸에 넣었다. 


☞ 김복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콩닥콩닥 뛰고, 긴장되고 힘들었다. 잔인한 영화가 아닌데 저런 긴장된 상황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든 것 같았다. 한 번도 감옥의 경험이 없고 평범한 사람들인데 모의상황이기는 하지만...감옥에서처럼 인간은 결국 극한 상황에 가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끄러운 상황을 만드는 77번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불편했다.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도 시끄럽게 싸우는 상황을 보면 가슴이 뛰고 식은 땀이 난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내 자녀들이 경험했던 어려운 상황들이 생각나서 그러는 것 같다.


☞ 배은주: 영화를 보면서 남편에게 들었던 군대 생활 이야기가 생각 났다. 때로는 가방 끈이 길다는 이유로, 때로는 이유없이 수시로 불합리한 폭력이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결혼하고도 3년 동안은 자다가 놀라서 깰까봐 이불도 같이 덮을 수 없었다. 


☞ 백재은: 고등학교 운동하던 때가 생각났다. 담당선생님과 선배들의 불합리한 폭력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저항하려고 했지만 선생님이나 선배들은 체벌, 수치심을 이용해서 저항하는 우리들을 통제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집단 안에서 권력을 이용해 “통제”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권력은 결국 한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다수가 이끌려 가는 경우가 많다. 


[사진]=영화 엑스페리먼트 (The Experiment)의 한 장면


☞ 김용봉: 영화의 모든 캐릭터가 결국 우리라는 생각이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롤플레이(역할극)가 아닌가 싶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 김복순: 내가 만약 죄수가 되었든 간수가 되었든 그 입장에서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을 받고 교육을 받았어도 상황에 영향을 받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력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조력자가 함께 한다면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배은주: 나 역시 불합리한 상황에서 77번처럼 행동했을 것 같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볼 때 교육하기 참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나도 어쩌면 간수들처럼 아이들을 억압하고 있지는 않나? 나도 보스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처음 센터를 운영할 때 이런 마음은 아니었다.


☞ 백재은: 처음엔 간수들에게 화가 났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저런 상황이 놓여졌을 때 나도 주어진 역할에 따라서 행동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장담할 수 없다.

☞ 김용봉: 나 역시 폭력적인 간수의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는 내 본성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큰 권력이 부여한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역할과 저항도 때로는 권력을 얻기 위해 비겁한 타협을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부분이 걸리는 것은 자기를 보는 것일지 모른다. 


77번도 ‘특종’이라는 목적부여가 없었다면 저항의 존재가 아닌 순응의 존재로 남았을 것이다. 그들은 감옥 실험실에 설치된 CCTV를 보며 안심했다. 잘못이 저질러지면 누군가는 이 상황을 통제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가 심각해지는데도 감시자는 방관했고 사태는 진화할 수 없는 단계까지 치달았다.  


사람은 스스로는 선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람이 선에 가깝게 태어나서 악하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실험을 마친 짐바르도 교수의 말을 믿고 싶다. “폭력적인 인간이란 없다. 폭력적인 상황이 있을 뿐이다"


톤 교수가 실험실에서 그 역할을 출실히 했더라면 죄수와 간수는 무사히 실험을 마쳤을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견제, 비판 기능이 살아 있어야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 역할은 현재 미디어(언론)가 하고 있다. 다시금 조정자 역할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글. 백재은, 편집. 김용봉


이 글은 지난 5월 2일에 있었던 SMD의 미디어세미나 ‘영화 보고 수다 떨기(영다방:영화수다방)’를 기록한 것이며, SMD 쪽발행지 '위퍼'를 통해 시민들께 영화소개를 하고자 한다.


Copyleft@ 본 콘텐츠는 알권리 충족과 정보공유를 위해 개방된 글입니다

편집은 허용하지 않으며 출처를 밝힌 공유는 가능합니다. 

반론이나 정정, 보충취재를 원하시면 메일로 의견주세요. 

srd20@daum.net


728x90